이도일몽

 영진은 눈 앞에 놓인 차를 홀짝 마셨다. 따뜻한 차 덕분에 복잡하던 심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고개를 숙여 검지의 굳은 살을 만지작 거리는 영진의 맞은편으로 긴 코트를 입은 원봉이 와서 앉았다. 영진은 고개를 들고 형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왔어요?”


 영진의 눈가는 입가와는 달리 분위기가 어두웠다. 원봉의 표정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김구선생은 괜찮습니까?”


 지난 주 남목청에서 총격이 있었다. 이운한이 쏜 총에 임정 인사 여럿이 죽거나 다쳤다. 김구도 중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중이었다.


 “네. 위기는 잘 넘기셨어요.”


 영진은 찻잔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애써 외면한 원봉이 물었다.


 “내 제안은 생각해봤습니까?”


 영진의 손가락이 멈췄다. 영진은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봤다. 먼지가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원봉은 영진의 손을 잡았다. 같은 길을 걸은 뒤로 수도 없이 잡았던 손이었지만, 오늘 원봉의 손은 정말로 간절했다.


 “같이 갑시다. 조선 의용대.”


 좌우합작이 실패한 임정은 또다시 존폐의 위기에 올라있었다. 분열의 상황에서 원봉은 더이상 임정에 기대지 않기로 결정했다. 처음부터 가는 길이 달랐다고 생각했던 임정이기에, 아쉬움은 없었으나 영진과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영진은 원봉에게 동지이자 연인이었고,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영진은 간절한 원봉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원봉의 손을 풀었다. 원봉의 가슴에서 무거운 돌덩어리가 쿵 하고 떨어졌다.


 “미안해요.”


 영진의 눈에도 안타까운 물기가 차올랐다. 원봉은 허공을 잡은 손을 거둬들였다. 원봉은 쓰린 마음으로 물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김구 선생때문은 아니에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둘은 서로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저는 독립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설령 그것이, 지금은 이름밖에 없는 임정일지라도요.”

 “그게 꼭 임정일 필요는 없어요.”

 “정부란 건, 고장났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정부가 삐걱인다고 포기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면, 그 정부가 삐걱이면 또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겠죠. 그러면 그건 정부가 아니라 다만 단체일 뿐이에요. 정부가 고장이 났으면, 고쳐 써야죠.”


 처음부터 가는 길이 달랐던 사람이었다. 원봉은 그녀의 길을 억지로 꺾을 수도, 그렇다고 그의 길을 꺾을 수도 없었다. 원봉은 그들 스스로가 세운 거대한 신념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상황을 원망하며 꼿꼿했던 고개를 떨어뜨렸다. 동지로, 연인으로, 가족으로 살았던 5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 주먹을 쥔 원봉의 손 위로 따뜻한 온기가 올라섰다. 원봉은 고개를 들어 영진을 봤다. 영진은 물기어린 눈가로 원봉을 보고있었다. 영진이 애잔한 미소로 말했다.


 “이도일몽, 가는 길이 달라도 목표가 같으면 동행할 수 있다고 했죠. 가는 길이 달라도 목표가 같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에요.”

 
 영진의 말에 원봉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웃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그때까지 살아일을지도 모르는 어둠의 시대였기에, 죽는 그 순간까지 놓지 않고 싶은 이 손이었지만, 원봉도 웃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소중한 시간을 쓰라림과 애달픔 속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도일몽... 우리는 헤어지는 게 아니라, 같은 길을 걷기 위해 따로 걷는 겁니다.”

 
 영진과 원봉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영진과 원봉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당신을 믿어요.”

 “당신을 믿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디서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한 곳에서 만나게 되리라고 둘은 굳게 믿었다.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서로의 눈을 깊이 보고, 서로의 마음을 뜨겁게 끌어안았다.





 -


 검은 구두코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후쿠다는 문을 열어주는 마루와 눈 인사를 하고 마당에 들어섰다. 일군의 명가인 후쿠다 가문의 본가라기엔 오가는 이 없어 썰렁하기만 한 마당이었다. 후쿠다는 돌길을 따라 걷다가 마루에 앉은 그림자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4년 전 황도파의 실각으로 지위를 잃고 조선땅에서 쫓겨난 히로시는 4년의 세월보다 훨씬 많은 날을 건너 뛴 것처럼 추레하게 늙어있었다. 머리에는 얇은 백발이 가득이었고 눈가는 퀭하니 그늘져있었으며 뺨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있었다. 마당에서 인영을 본 히로시는 누군가를 찾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이니?”


 그러나 그가 찾던 사람이 아닌 것을 확인한 히로시는 다시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찾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르지는 않으나 모르는 척 인사한 후쿠다가 마루에 앉았다.


 “본국으로 돌아온지도 몰랐군.”

 “얼마 안 됐습니다.”


  히로시는 텅빈 마당을 내려다봤다. 아무도 없었다.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던 영진은 영 닿지 않을 곳으로 제발로 떠나갔고 사랑하던 아내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남아있던 현옥은 영진이 떠나고 얼마지않아 영진이 있던 곳으로 떠나버렸다.


 “조선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문전성시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을 보기 어렵다. 내 밑에서 콩고물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쓸개라도 빼줄 것 같은 놈들이 내가 실각한 후로는 머리카락 하나 안 비치더군. 덕분에 하루 종일 마루만 지키고 있네. 이렇게 자네가 돌아온 것도 까맣게 모르고 말이야.”


 해가 뜨고 지기만을 기다리는 노인처럼 무력해져버린 히로시를 지켜보던 후쿠다는 마침내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리고 말했다.


 “궁금해하실까봐 들렸습니다. 영진씨는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최근 임정 인사와 같이 목격된 바가 있다고 하니 아직 임정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진의 이름에 히로시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히로시의 시선 끝이 마당 한켠에 닿았다. 어린 영진의 자전거 뒤를 잡았던 곳이었다.


 “내 방 한 벽면에 황실과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과 상패가 가득이야. 평생을 황군에 종사해서 그 벽을 가득 메웠지. 영진이의 불미스런 일도 그 명예를 전부 더럽힐 수 없었어.”


 히로시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닿았다. 열살의 영진이 연을 날리던 자리였다.


 “영진이가 내 곁을 떠나갔을 때 뭔가 잘못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벽면에 있는 수많은 훈장과 상패들을 보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더군. 그걸 인정하면 그 벽면에 있는 모든 것들이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거니까.”


 히로시는 대문을 돌아봤다. 교복을 입은 영진이 들락날락거리던 곳이었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타버렸어. 그래서 난 죽을 때까지 그 아이를 용서할 수 없을거야.”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내내 듣고 있었던 후쿠다는 저물어가는 태양빛이 천천히 물들어가는 마당을 내려다봤다. 후쿠다는, 히로시가 어째서 그 영광스럽다는 상훈이 모셔져있는 방이 아닌, 마루에서 돌아오지 않을 이를 기다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굳이 입 바깥으로 내뱉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을 잃고 늙은 노인에게 동정 어린 충고 정도를 건네줄 뿐이었다.


  “원장님은 호랑이 등에 타고 계신게 아닙니다. 단지 원장님이 모는 자동차의 가속 페달을 밟고 계신 것 뿐이죠. 원장님께서 멈추고 싶으시다면, 다만 페달에서 발을 떼시면 됩니다.”


 후쿠다는 별 말 없이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마당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히로시는 여태껏 그랬듯이, 텅빈 마당을 힘없이 내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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